중앙회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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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에게 연민을 갖는 사회를 만들자
작성일
2021-11-25

경제는 자본과 노동이 결합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노사관계라는 이름으로 항상 대립과 갈등이 있었지요. 노사관계는 양상이 다르지만 협력 지향적일 때는 어느 정도 착한 성장을 이뤘으나, 갈등이 심화된 나라에서는 양적 성장을 했다 하더라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기득권 세력과 사회적 약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집단이 상생 관계에 있을 때는 그 사회가 보다 안정적이었지만, 대립적이었을 때는 불신과 분노가 팽배하는 사회가 되었지요.

얼마 전에 대기업 임원으로 계셨던 분이 여당의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분으로 알려졌지만, 그분이 속한 정당의 정책은 대기업 출신이라는 그의 정체성과 맞지 않아 다소 잡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업과 가진 자를 악()이라고 보는 우리의 인식이 문제라는 말을 했습니다. 기업이 없으면 노동이 있을 수 없고, 노동자에게 분배되는 상당 부분의 정부 예산도 기업에서 충당하지요. 그러니까 기업이나 가진 자를 악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인식임이 분명합니다.

다만 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 달라는 것이고, 또한 우리나라 상위 0.1퍼센트의 한 해 수익이 하위 26퍼센트 인구 소득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현실에 상당한 소외감을 갖게 되지요. 그것도 잘못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초고소득층들의 재산 형성이 부끄러움 없이 능력과 노력에 기인했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욕심을 내자면 그분들이 미국의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과 같이 공익사업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재산을 상속하지 않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지요.

사회적 약자들은 금전적인 보상만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따뜻한 시선을 더 원하는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연히 사회적 약자 편에 서야하는 종교마저도 극히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정치화·세속화 되었다는 점입니다. 면죄부를 사야 구원을 받는다는 중세시대 가톨릭 교단의 극단적인 타락이 종교 개혁의 원인이 되었지요. 그러나 극히 일부 대형 개신교회는 자신이 탄생했던 이유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6.25 전쟁 이후 최빈국 중 하나로 시작한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모범국가입니다. 지금도 국위를 선양하는 각 분야의 한류는 세계를 감동시키고 지구촌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우리는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 출산율 최저, 남녀 임금격차 최고 등 부끄러운 세계 기록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와 기후위기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협하고 있지요. 그동안 세계화를 추진하다보니 전 세계가 공급망으로 얽혀있어 생산과 유통에서 어느 한 나라가 마비되면 그것은 여러 나라에 그대로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최근 요소수와 관련한 우리의 어려움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경제는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효율성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렇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위험 부담을 약자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탄력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이번 코로나19라는 어려움을 겪으며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상대적으로 소외받던 음식점 종업원, 배달원, 양로원의 돌봄 노동자 등이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저임금으로 일해 온 노동자들이 우리에게는 필수적인 절실한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성장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부자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양적 성장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좋은 성장이 아닐까요? 사회적 약자에게 연민을 갖는 것이 새마을 정신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새마을운동신문> 2021.11.25.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