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회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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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기절제가 필요한가?
작성일
2021-11-11

대학생 시절 테네시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희곡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 당시 친구와 서로 읽고 독후감을 말하면서 그 열차는 얼마나 흔들릴까?’라는 농담을 주고받은 기억이 납니다. 1947년에 발표된 이 희곡은 우리나라에는 1950년에 연극으로 처음 소개되었지요. 희곡의 간략한 내용은, 한 지주의 딸이 교양 있는 귀부인답게 살기를 원했으나 어느 한 순간 거칠고 야성적인 동생의 남편에 겁탈을 당하는 몇 가지 불운을 거치면서 욕정에 몸을 내 맡기는 비극적인 내용입니다.

이 희곡이 던지는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누구나 교양 있고 멋지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내면에는 어떤 욕망이나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욕망과 욕구를 절제하면서 살다가도 어떤 계기에 그 절제가 무너지면 쉽게 욕망의 노예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위의 두 책과는 결이 다른 대니얼 엑스트의 <자기절제 사회>라는 저서가 있지요. 여기에서는 자기절제와 원초적 욕망 사이의 심리적 변화, 그리고 절제의 실패로 인한 여러 사회적 부작용들뿐만 아니라 자기 억제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까지 소개하였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유혹의 과잉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자제력을 시험받고 있지요. 따라서 우리 인생은 욕망이나 욕구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극복하여 이성적인 길로 가느냐 하는 선택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절제를 통해 욕구를 극복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도 나는 적을 정복하는 사람보다 욕구를 극복하는 사람이 더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자기 절제의 실패, 다시 말해 욕망에 굴복한 결과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미국에서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사망자의 20%에 달하며, 과식으로 인해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되는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은 4,70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극단적인 자기 절제의 실패는 마약의 남용과 범죄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자기절제 사회>에서는 자제력이 약화되는 원인을 인간의 약해진 의지력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변화, 외부규제의 약화 등에서 찾고 있습니다. 술에 취해 헤어진 연인이나 부모, 또는 직장상사에게 새벽에 전화를 걸어 행패를 부리는 것을 예방하는 프로그램도 등장하였고, 자격증을 갖춘 마약 및 알코올 상담사가 경영하는 기업이 여러 개 주에서 성업 중에 있다고 합니다. 문신 제거하는 사업도 번창하고 비만 방지를 위한 위 절제 수술의 시장 규모도 늘고 있으며 심지어는 소아 성애를 극복하지 못해 거세를 자청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말미에는 자기 억제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근육을 단시간에 키울 수 없듯이 의지력이라는 근육도 시간을 갖고 키워야 하고, 타인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므로 인관관계를 잘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게는 책상정리에서부터 가정이나 직장에서 유혹에 빠질 수 있는 환경을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합니다.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이 봉사를 하는 것도 일단 자기절제가 기반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절제를 통해 삶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 피폐해진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새마을운동신문> 2021.11.11. 게재되었습니다)